20141110

  • 우리는 매우 느리고 매우 작은 3차원 세상에서 오랜시간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상대성 이론을 수식이 아닌 직관으로 떠올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뭐든 직관으로 떠올리고 싶어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오랜 시간동안 적응해 온 인간의 본능이므로 여러 방법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중 나는 팽팽한 천 위에 공을 올려 놓은 것을 상상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 같다. 2차원인 천을 공간과 시간으로 치환하는 상상력만 발휘한다면 나머지는 어느정도 직관으로 그려진다. 천 위에 구르는 공들은 행성이나 별. 무거운 별이나 행성은 천을 내려앉게 해서 주변의 별을 자기 쪽으로 굴러들어오게 할 것이니, 이것이 중력. 팽팽하던 천이 내려 앉는 것은 팽팽하던 공간과 시간이 내려 앉아 구부러져 휘는 것일 테고… 천에 아주 작지만 졸 무거운 것을 올려 놓으면 천이 푹 꺼질테니 그건 블랙홀. 심플하다. :)
  • 해철이 형이 떠나고 보름이 지났다. 이제야 좀 현실로 돌아온 걸까? 사실 나도 지금 내 상태를 잘 모르겠다. 그래, 이렇게 뭔가라도 끄적이고 싶은걸 보니 최소한 상실감이라는 폭풍이 이젠 어느 정도 날 쓸고 지나간 거겠지. 감정적으로 쏟아지는 날이 몇 번 더 오리라 예상하지만… 나이 서른 이상 먹은 사람에게 이별 후 겪는 일련의 과정이란, 더 이상 예상 못하는 일이 아니니… 어느정도 담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떠난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었는지 알아요? 이렇게나 당신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나를 만들었어요” 라고 말해봤자 허공에 대고 발길질 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간 사람은 어차피 못 듣잖아. 남겨진 사람을 위한 이기적 행동이겠지. 내 감정을 쏟아내고 비워내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 마치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오래된 연인에게 급 이별통보를 받은 후, 혼자 어두컴컴한 방에서 아픔을 달래며 찌질한 편지를 쓰는 것과 같은.
    그래도 말해주고 싶었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수십, 수백번 다시 들으며 나도 모르게 새겨진 노랫말과 소리들..그것들이 세월 속에 쌓여가다 서서히 나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움 속에 절절히 깨닫는 중이라고. 당신이 나의 조각을 만들었다고.아버지 어머니보다 먼저, 내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말 해준 사람. 죽음 앞에 서면 내 인생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사람. 행복의 본질은 남을 쫓는 게 아니라 나를 쫓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 사람. 말하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지 보여준 사람. 아리랑이 분명히 내 DNA 속에 있던 노래라는 것을, 그리고 음악 속에서 우주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사람. 내 인생 첫 공연의 주인공. 심지어 나와 생일도 같은 사람. 그래서 나는 형을 형이라 부를 수 밖에 없다. 형. 해철이 형. 잘가. 고마워.

  • 나는 사실 마왕이라는 별명이 싫다. 왠지 형이 남긴 음악들이 고스트스테이션에 묻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앞으로 틈 날 때마다 형의 음악 얘기만을 해 보려고 한다. 내 인생의 O.S.T 중 1번 트랙은 바로 신해철이니까.